초기도읍지에 대한 연구와 발굴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1983년부터 몽촌토성 발굴 『몽촌토성』, 서울대학교 박물관, 1988, 1989.
, 1986년부터 6차에 걸쳐 이뤄진 이성산성발굴 『이성산성』, 한양대학교 박물관
, 1996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풍납토성발굴 『서울 풍납토성(백제왕성) 실츨조사연구』,
백제 건국은 이보다 한참 전이며, 최근 발굴 성과에 의하면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몽촌토성 것보다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몽촌토성보다는 풍납토성이 초기 왕성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Ⅴ. 미궁에 빠진 왕성의 위치와 떠오르는 풍납토성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이민들이 세
백제사는 수도를 삼은 지역에 따라 크게 한성시대(풍납몽촌토성)-웅진시대(공주)-사비시대(부여)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다루고자하는 백제고분에 관한 양상 또한 그와 같은 백제사의 양상과 일치한다. 이 글에서는 역시 그 전개방식을 따르기로 한다.
백제초기의 고분에 관한 연구는 마한지역 내에
풍납토성 내부 포함층에 대한 첫 조사가 이루어져 백제시대의 주거면 2개층과 풍납리무문토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 등이 발굴되었다. 그 결과로부터 풍납토성은 서기 1세기경 위례성과 거의 동시에 축성되어 475년까지 존속된 반민반군적 읍성으로서, 개로왕 21년(475)에 고구려군이 남하하여 7일 동안
백제(百濟)가 한강(漢江)유역에서 건국(建國)․발전(發展)했던 때의 대표적(代表的)인 토성(土城)이다. 몽촌토성은 한강지류에 해당하는 이곳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들었고, 특히 북벽의 단을 이룬 곳에서는 나무울타리를 세웠으며, 그 외곽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었음이 확인